인내 끝에 경험하는 르호봇의 축복
2026-05-21 19:25:14
박은나
조회수   9

오늘의 말씀은 창세기 26장 22절-25절 이었다.  이삭이야기이다. 우물을 파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메마른 땅에서 물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겠는가. 그런데 어렵게 얻은 우물마다 다툼이 일어났고, 이삭은 떠났다. 이삭은 하나님이 여실 길을 신뢰하고 그 우물을 떠났을 것이다.

나는 올해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을 붙들고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 마음 한구석에 슬그머니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애써 걸어온 시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것 같을 때, 내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하나님마저 침묵하시는 듯 느껴질 때, 내 마음은 더욱 좁아졌다. 그런데 "르호봇"의 우물에서 나의 좁아져있던 마음이 넓어짐을 느꼈다. 막힌 우물 앞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길을 준비하고 계셨다.

여전히 부족하고 조급한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런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지금의 인내가 헛되지 않을 것임을, 언젠가 하나님께서 내 삶에도 르호봇 같은 넓은 자리 하나를 허락하실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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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이명노 2026-05-21 19:29:53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동행하기를 기뻐하고 순종하며 걸어가신다면 집사님의 넓디넓은 르호봇이 눈앞에 떡하고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윤명희 2026-05-21 19:47:42
우리의 부족한 모습 속에서도 항상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르호봇의 은혜가 함께 하길 기도 합니다~~
모든것이 은혜♡ 2026-05-21 20:27:37
집사님의 인내의 시간 끝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르호봇의 은혜가 반드시 열릴 줄 믿습니다. 좁아진 마음까지 넓혀가시는 하나님을 함께 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최진현 2026-05-21 23:54:06
4일 동안 파 내려온 은혜의 우물 위에, 마지막 성령의 단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집사님의 모든 막힌 담을 허물어뜨릴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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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지 2026.05.21 (11 명 읽음)

178. (김종원)목사님, 사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유치부 교사와 부부사랑학교 조장으로 섬기고 있는 17-5 윤인지 집사입니다.

 

얼마 전 담임목사님께서 특새 강단초청 대상자로 [라함]을 광고하셨을 때.

, 혹시 주님께서 부르시는 건가?’

 

저는 딱 2년전, 2024 봄 특새 때 받은 은혜를 통해 [남편을 닮은 예쁘고 건강한 딸을 주세요]를 기도제목으로 중보요청을 하며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도 선물을 주시기를 간절히 가다려왔습니다.

 

저도 저이지만, 3년 전 친하게 지내는 가정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막내가 태어났습니다.

승호 하나면 족하다던 남편이, 그 가정의 딸들을 볼때마다 눈을 떼지 못했어요/

마치 14년 전 연애 시절 저를 보듯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드라구요.

 

'남편이 승호를 사랑하긴 하지만..그래도 아빠는 역시 딸인가?'

제가 주님께 선물 받은 승호로 인해 얼마나 행복한지,

사랑하는 남편도 둘째 딸을 통해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딸 주세요 주님, 남편닮은 예쁜 딸주세요 제발! 하며 2년이 넘게 주님께 떼를 썼어요.

 

하지만 소망이 실망으로 변하던 2년차, 기도도 점점 뜸해졌고..

작년 하반기에 태국 던못뎅에서 딸아이를 입양(결연)까지 하게 되자

아이고..주님, 여즉 저희 가정에 천사를 보내주지 않으신 이유가 혹시 이거였을까요?

이렇게 다른 가정의 아이들 돌보는 게 주님께서 저에게 바라는 일이셨을까요?’

라며 원망 아닌 원망도 잠시 들었고..

 

결국 드문드문 하던 기도마저 사라졌습니다.

실망이 체념으로 굳어질 무렵, 라함이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남편은 제가 난임치료를 받자고 했을 때도 거부했고입양을 하자고 했을 때도 거부했는데..

사실은 둘째도 내 욕심이었나? 그렇게 물어보자 남편은 아니라고 하고..피임을 안하니까  노력하는 게 맞다고 하고..

아니야!! 난 둘째 갖고 싶어!!

아.. 그럼 나 혼자라도 올라가야 하나?? 근데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그러다 특새 전날, 남편에게 조심스레 라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외로 흔쾌히 좋다고 하지 않겠어요?!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며, 설레기도 떨리기도 하는 심정으로 강단초청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기도회를 인도하기 시작하시던 담임 목사님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매 주일 아기축복 기도 시간에 아기축복 기도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그래서 여러분께 사과드리고 싶었고

저도 6년을 난임으로 힘들었던때가 있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고..

(정확한 목사님 말씀은 아니지만..나눠 주신 기억에 의지하여..)

 

그 말씀을 듣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맞아! 아기 축복기도..

그래서 내가 그렇게 그 화관 쓰며 환하게 웃는 엄마, 단단하게 아기를 안으며 둥가둥가 하던 아빠,

사랑스러운 옹알이를 하던 천사같은 아기들에게서 그렇게 눈을 떼지 못했던 거구나!

 

사실 나는 아직 이 소망을 놓지 못한게 맞았구나!!

 

그러다 목사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주님께 고하기 전에 사실 먼저 회개하셔야 한다고..

혹시 피임을 하며 신혼의 기쁨과 자유를 누린다는 핑계로

감히 생명 주실 주님의 권한과 섭리를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닌지 회개부터 하시라고..

 

아차!

뜨겁던 가슴이 갑자기 서늘해졌습니다.

 

과거 불신자였던 시절 가장의 부담과 무게 때문에 둘째갖기를 거부했던 남편을 위해

적극적으로 피임에 협조(?)했던 지난날 나의 과오를 회개하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요..

 

심지어 담임목사님조차 우리에게 사과를 하시는데..

 

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 가졌을 소망()

주님께서 상처받은 마음과 두려움을 치유까지 해주시며 둘째 가질 용기를 주셨는데도

하나님 나라나 영광이 아니라

오직 남편의 기쁨과 행복만을 바랐던 나의 잘못된 우선순위가 떠오르며 깊은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님 잘못 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나 이기적인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한참 울고 나니, 여기저기서 나 같은 심정으로 울며 기도하는 엄마들의 곡소리가 선명해졌습니다.

주님, 부디 여기 이 가정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라와 한나의 기적처럼 이들 가정의 태의 문을 열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을 보내주세요!! 저희 가정은 승호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둘째 안 주셔도 좋으니 제발 이분들에게 하나님의 상급을 선물 해주세요!! 저희가정처럼 자녀로 인한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해주세요!!!!’

 

그러면서 같이 대학원을 다녔던 지인, 8년째 난임으로 비자발적 딩크족이 된 가정이 떠올랐습니다.

00선생님의 가정에도 주님의 기업을 선물해주세요!

그 선생님 아직 사라보다 훨씬 젊어요!! 주님 안에서 더 큰 기쁨과 복을 누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심지어 그 가정을 위해서도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해주셨습니다.

 

안수기도를 받고 본당을 나서며..

남편의 손을 잡고 나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아렸던 가슴에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저랑 지 남편밖에 모르던 국가대표급 죄인인 저를

구원해 주시고, 여러 귀한 사명의 자리에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한량 없는 은혜인데..

 

저도 몰랐던 제 마음 구석 흙구덩이로 꽉 막혔던 우물까지 단번에 뻥~ 뚫어주시고,

생명수가 콸콸 흘러넘치게 해주신 우리 주님.

여전히 국가대표급 죄인인 저이지만, 우리 주님만을 찬양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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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한우리예교 2026.05.21 (15 명 읽음)

177. 누구보다 전출을 원하시는 하나님...ㅎㅎ

저는 37주 4일을 넘어가고 있는 임산부 입니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죠ㅎㅎ

지난달까지 일을 하다가 지금 출산휴가중인데, 처음 회사대표님으로부터 5월부터 쉬어도 된다 라는 말을 들었을때 너무 기뻤습니다.

특새를 여유롭게 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지난해 봄과 가을 특새때는 출근시간때문에 교구집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등교,등원 시켰어요~ 동역자의 힘!! )

게다가 지난 주일에 진통이 특새후에 꼭 와야 한다며 기도하겠다고 개인적으로 연락 주신 분들도 있었답니다!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이래서 중보기도의 힘이 중요하다 했네요..ㅎㅎ 우리가족의 전출을 이렇게나 응원해주시다니..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전에 해야될일이 많이 있어서.. 특새전 주일까지도 잠을 일찍 자진 못했습니다. 휴가 중임에도 특새후 귀가 하면 편히 쉬지 못했어요...ㅎㅎ 

그러다 오늘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이 든거예요....

알람 없이 푹 잘 자고 있던 저는 친한 동역자의 전화로 일어나게 됩니다.....ㅜㅜ

동역자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급히 일어나 아이들과 보이는 옷만 걸쳐입고 급하게 교회로 향했고 설교가 시작될즈음 도착해서 영아부실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전출하고자 하는 저의 간절함을 아시고 동역자의 마음을 흔들어 제게 전화하게 하셨어요...!!!! 특새를 기대하며 기다린 우리가족의 마음을 아셨던 거예요..

전화해준 동역자에게도, 그리고 하나님께도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특새가 하루 남은 오늘, 다시 한번 느낍니다.
우리는 혼자 신앙생활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요ㅎㅎ

깨우시는 하나님, 기도해주는 동역자들, 함께 아이들을 품어주는 공동체 안에서 저는 오늘도 은혜로 예배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새벽 어스름 속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가족의 걸음을 알고 있다” 하고 조용히 등불을 밝혀주시는 것 같았어요

이제 출산도, 그리고 전출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앞으로의 길에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와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번 특새 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고 마음 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은 하루의 특새도, 금요성령집회까지 은혜 가운데 잘 달려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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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수 2026.05.21 (16 명 읽음)

175. 특새 동판받기 어렵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

 

 오늘도 어김없이 특새 알람이 울립니다.

아내가 알람을 끄며 '특새 동판받기가 어렵네....' 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경산중앙교회에 온지 벌써 7년째입니다. 

그동안 모아둔 동판만 6개, 이제 한개만 더 모으면 동판액자를 받을수 있습니다.

동판액자 그게 뭐라고....이게 땅속 굼벵이처럼 무려 7년의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받을수 있습니다. 통독메달도 받아보고 직장에서도 각종 표창이나 상도 받고 자격증도 받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경산중앙교회 특새동판액자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위해 7년의 수고를 했듯이 경산중앙교회 특새 동판액자도 7년의 세월을 견뎌야 받을수 있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처음 특새를 할때 대구에서 교회까지, 다시 교회에서 문경까지 하루 250km 정도를 운전하니 어떤 날은 1,2초간 필름이 끊기는 졸음운전도 하고 

지금은 외곽순환도로가 잘 뚫여있어 강단기도까지 마치고 식사하고 가도 출근하는데 여유가 있지만 그때는 설교가 끝나면 바로 나와야 지각하지 않고 출근할수 있었습니다.

제자반, 사역반 훈련을 할때에는 3층과 4층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안내를 하고 그 와중에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울며 부르짖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기도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제 돌아보니 다 응답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4~6)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형편없는 나를 이렇게 돌보시는가? 오늘 주여..라고 기도하는데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습니다.

저는 T라 눈물이 별로 없습니다. 아내는 F라 늘상 펑펑울며 기도하며 휴지를 꺼내놓고 계속 기도하지만 저는 항상 짧고 굵게 기도했습니다.

지난 7년의 세월...오직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하셨구나...정말 자격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셨구나. 그생각만 떠올랐습니다.

은혜아니면...주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수 있었겠는가?

주님의 강한 손이 붙들고 계시기에, 걱정되지 않습니다. 

이 길을 완주하게 하실 주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걷고 또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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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수 2026.05.21 (13 명 읽음)

173. <특새 넷째날 설교> 불신앙의 우물을 뚫어야 한다

화종부목사님의 설교가 복음과 구원론의 핵심과 정수를 차분하게 풀어가시며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신가에 대한 강해설교였다면 김다위목사님은 마치 외과의사처럼 매스를 들고 우리 신앙의 문제들을 하나씩 도려내는 수술과 같은 설교를 하시네요. 녹음된 말씀을 수정하면서 정말 책상위에서 적어내려간 설교가 아니라 자신의 삶속에서 직접 도전받으며 기도하고 또 체험한 삶의 증거를 중심으로 살아있는 설교를 해주셨네요.

'사명의 땅에 거하라...'

'불신앙의 우물을 파내라'

'그 우물을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라'

주님의 부르심의 자리, 사명의 땅에 끝까지 붙어서 약속의 성취를 맛보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특새 넷째날 설교>

불신앙의 우물을 뚫어야 한다

김다위목사님

  특새 네 번째 날 정도 되면 보통 숫자가 줄어드는데 오늘 보니까 빈자리가 없는 걸 보니까 정말 우리 특새 승리하신 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제 비가 오고 오늘도 살짝 비가 오는데 제가 얼마 전에 이제 뉴욕을 갔다 왔는데 그때도 비가 왔어요. 왜냐하면, 비를 몰고 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길 믿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틀 정도 출석해 보니까 이렇게 분위기를 알 것 같습니다. 군대 분위기가 좀 있어요. 뭔가 군 장교 출신 리더쉽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최강 경중, 최강 예수 굉장히 인상 깊게 제가 봤는데 오늘도 느낌이 비슷해요. 나이만 1~2살 정도 많으시더라도 느낌은 거의 같습니다. 굉장한 에너지와 열정 오늘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로서는 오늘이 마지막 말씀인데 오늘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 믿음으로 반응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수많은 은혜와 복이 여러분들의 삶가운데 부어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 어제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면 오늘은 좀 이삭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사면은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본토 아비친초를 떠나는 것. 그렇다면 이삭의 사명은 무엇이냐면 부르신 곳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삭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끝까지 지신 것 바로 이삭의 사명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사람마다 사명이 다 다르지만 특별히 오늘 머무는 것에 대한 또 막힌 곳을 뚫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어느 곳에 머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항상 편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해하는 세력도 있고 또 막아서는 세력도 있고 공격하는 대적도 있기 때문에 어떤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기란 참 쉽지가 않죠. 여러분 이삭도 마찬가지였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땅이라는 곳을 떠나지 말라 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그 땅에 흉년이 벌어집니다. 가능한 땅에 흉년이 오니까 여러분 흉년이 오면 버틸 수가 있겠습니까? 쉽지가 않죠. 그래서 1절에 보면요. 아브라함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었다는 겁니다. 흉년이 드니까 음식이 없기 때문에 곡식이 없기 때문에 그때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는 그래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경험합니다. 비슷한 경험을 또한 이삭이 하는 거죠. 흉년이 드니까 또 점점 내려가는 거예요. 남쪽으로...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2,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에 거주하라, 경산땅에 거주하라, 대구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신에게 주리라 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준 사명지에 머물면 내가 너에게 복을 줄 거야.

이 이상에게 주어진 사명은 어찌 되었든 부르신 곳에서 끝까지 버텨내는 사명. 이 머무는 사명이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신 것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은 곳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의 처소를 떠난 자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반역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사탄입니다. 천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였다가 처소를 떠났다가 결국에는 사탄이 되어버린 무리들이 있었던 것이죠. 또한 직분을 받았지만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고 떠난 자가 누굽니까? 가롯 유다였습니다.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자신의 부르심을 떠난 자들 이야기가 성경에는 곳곳에 나오죠.

무엇보다도 창세기 맨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나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 그들에게 아담을 찾으시며 하나님께서 묻는 말씀이 이거였지요.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들은 어디에 있으십니까? 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이 질문은 우리 어떤 장소 개념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 뭐냐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지 않고 말씀 안에 있지 않고 기도의 사명의 자리에 있지 않고 너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시는 겁니다. 오늘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를 지킨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선택하는 것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에 머물고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나는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이야기인데 저희 아버지는 이 경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아마 동쪽으로 한 2시간 정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건천이라고 하는 시골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났었습니다. 그래서 6.25가 좀 지난 1953년쯤에 저희 아버님이 해방둥이신데, 저희는 할머니죠. 저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당시에 포목장사를 하러 장터에 가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장사를 하시고, 또 저희 아버지는 할 일 없이 그 동네에서 놀다가 이제 장사를 마치고 해가 지기 때문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트럭에 짐을 싣고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지역에 아버님의 외삼촌이 살고 계셨어요. 수요일이었기 때문에 저녁이었기 때문에 지금 가지 말고 밥을 먹고 예배를 드리고 자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라고 권면을 하신 겁니다. 이미 저희 아버님은 트럭에 탄 상황이었고 짐도 실은 상황에서 저희 할머님이 고민을 한 겁니다. 어떻게 할까? 트럭을 타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내일 돌아가야 할까? 중요한 선택이죠. 중요한 짧은 고민의 순간 속에 할머니께서 그러면 남아서 예배 드리지 뭐 하고 다시 트럭에서 탔던 아들을 내려놓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사이렌이 울리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그 타려고 했던 트럭이 무장공비의 공격을 받은 거예요. 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산속에 남아 있었던 그런 무장공비들이 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트럭을 습격하여 다음날 아침에 다른 차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어제 타려고 있던 차가 비탈길에 굴러서 불에 타 있고 짐들은 널브러져 있고 많은 사람들 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일 어제 그 트럭을 탔더라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할머니께서 선택을 잘하신 것이지요.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것. 장사보다 더 중요한 것,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운명을 갈랐는지 저는 그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으면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또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릴 적부터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바로 이삭에게도 그러한 고민이 있었을 겁니다. 흉년의 시기에 내가 약속의 땅을 떠나야 하느냐, 내가 살 길을 내가 혼자 찾기 위해 내려가야 했냐 말아야 했냐 고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그 가나안은 떠나질 않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이삭에게 복을 주신 겁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라는 그것을 지켰을 때에 크신 은혜를 주셨던 것이죠. 문제는 그 다음에 또 시작이 됩니다. 그런 흉년의 시기에 복을 받았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는 거예요.

너놈의 이방 사람이 와서 이렇게 잘 되느냐. 어떻게 너만 이렇게 잘 될 수 있느냐 원래 그 땅은 우리 땅이다. 원래 그 우물은 우리 것이다. 이러면서 와가지고 자꾸 뺏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해를 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14, 15절이죠.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잘되면 박수 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이삭이 그런 시기를 받는 거예요. 15그 아버지 아브라함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안타깝죠? 우물이 얼마나 귀한 겁니까? 당시에 지금도 지금은 우리가 물 관계 시스템이 잘 돼 있긴 하지만 고대 근동에서 사막 지역의 우물은 생명과 같은 곳인데 그것을 흙으로 메웠다는 거예요. 그렇게 막 가는 사람들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 이거예요. 내가 못 되면 너도 못 돼야 된다.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 우물을 막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삭은 그 자리를 피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물론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다른 우물을 찾아서 또 우물을 파냅니다. 또 그러면 다른 그 블레셋의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서 또 그 우물을 메꾸는 거예요. 또 뺏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우물 이름을 이삭이 짓는데 하나는 에섹이다. 무슨 뜻이냐면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시기하여 다투었다. 에섹이라는 우물을 짓습니다. 또 빼앗아 가서 다른 우물을 봤더니, 그 이름은 또한 싯나라고 짓습니다. ‘싯나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면 대적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사탄과 의미가 같습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 이삭이 그렇게 계속 잘 되자 빼앗고 빼앗고 공격하는 그 배후에 사탄이 있었던 것이지요.

악한 영의 공격이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삭이 공격을 당한 거예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주위로부터 이런 공격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모함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공격을 당하여 나의 사명지를 떠나고 싶다. 이런 관계를 다 떠나고 싶다. 심지어 신앙도 뭐고 이제는 정말 그만두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삭이 그러한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거에요. 이삭에게서의 이 우물을 구원의 우물이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죠. 우물에서 만납니다. 그러면서 물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는데 이 우물이 무엇이냐 생수가 무엇이냐 이렇게 얘기를 하죠.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즉 그 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종합해보면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의 우물이고 그 물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됐다고요? 막혔다는 것입니다. 그 대적이 이삭의 우물을 막아서 그가 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생명 어떤 성령의 생수를 마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들 혹시 우리 오늘 특새에 오신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혹여나 기도가 안 되는 분 있습니다. 기도가 잘 될 때가 있지만 잘 안 될 때도 있죠. 이상하게 예전에는 1시간 기도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10분밖에 안 됐어. 20분밖에 안 됐어요. 뭐가? 기도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답답한 거죠. 가정의 불화가 있습니다. 부부 간의 관계가 틀어져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멀어져 있는 그런 가정들도 있을 수 있지요. 말씀이 믿어지고 그냥 내 마음속에 우러나는 마음으로 아멘이 되야 되는데 아멘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아멘이 아니라 노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저 말씀은 저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느껴질 때도 있죠. 여러분들 원인이 무엇일까? 우리의 영혼의 깊은 것에 우물이 무엇인가에 의해서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지금 관계가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이 블레셋이 뿌려놓은 흙더미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어떤 것이냐 이런 게 있어요. 제가 미국에서 이민교회의 목회를 할 때에 한 청년과 대화를 하는데 이 청년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냐? 귀하다.’

그런데 저는 그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간섭하는 분임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왜 그러냐 했더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세상에 왜 이렇게 고통과 고난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더라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전히 전쟁과 기근이 많은 걸 보니 하나님은 계셔도 이 세상에는 간섭하지 않는 분 같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신론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18세기 영국에 퍼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개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웨슬리가 그것을 반박하고 깨기 위해서 웨슬리 부흥을 일으켰던 것이거든요. 이런 것을 믿는 사람들 왜 그런가?

사탄이 뿌려놓은 흙더미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뭔가 막혀있는 것이 있는 것이죠. 자신의 삶에 풀어지지 않는 고난의 문제를 보면서 하나님은 내 삶에 역사하지. 맞는 것 같다라고 하는 부모 세대에서 뿌려놓은 이 쓰레기를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여러분 다음 세대 안에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인 거예요. 믿음의 부모 세대는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어요. 경험이 있어요. 기도 가운데 뜨겁게 하나님 만난 체험이 있지만 다음 세대는 전해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삶에 역사하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을 보면서 이런 청년처럼 하나님의 마치 시계를 만들어 놓고 전혀 간섭하지 않는 그 시계공처럼 그렇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버리는 이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질 때가 많이 있는 것이죠.

 

또한 블레셋이 뿌리는 흙등이 또 어떤 종류가 있냐면 오늘 이것이 핵심인데 하나님이 선하신데,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인가? 다른 분에게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하나님이 선하신 것 같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언제 한번 예배를 드리는데 지난번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책들을 이제 예배에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어떤 분이 저에게 찾아오셨어요? 목사님 얼마 전에 예배 때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죠. 제가 들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전에 나 있던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고 리더십에게서 큰 실망을 하게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을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이후에 문제는요. 더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질병이 찾아오고 삶은 더 피폐해지고,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무엇이냐면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불신 때문에 내 영혼이 메말라 가고 우리 가정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음을 말씀을 듣다가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회개하시면서 하나님, 아니 목사님 제가 들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저를 위해 좀 기도해 주세요. 펑펑 우시면서 이렇게 기도를 받으러 오시는 거예요. 제가 그분을 얼마나 눈물로 기도했는지 몰라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가 이런 의구심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를 들면 아브라함 아내였던 사래가 이를 갖지 못했을 때 어떤 심정이 있는지를 아십니다. 성경이 나와 있어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과 동침하라.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을 주었지만 내게는 생명을 주지 않으셨어..’

 

어떤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서운한 마음이 느껴지죠?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둘 셋 넷 이렇게 주는데 왜 저에게는 한 명도 주지 않으십니까? 여호와께서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여종과 동침하여 태를 이어가십시오.

여러분 정말 그렇게 하라는 겁니까? 아니죠. 서운한 것을 표현한 것인데 또 그걸 굳이 듣고 또 아브라함도 또 자녀를 낳잖아요. 그래 가지고 또 문제가 발생하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그런 것이냐 이러면서 이런 가정의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있어서 결론을 내리기를 하나님은 내게 선한 분이 아니었어 라는 그 마음이 그 영혼을 굉장히 아프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 씨뿌리는자의 비유가 나오죠. 그러면서 종들이 말하는 거예요.

 

주인이시여 우리가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이 가라지는 이 잡초는 어디서 자란 겁니까? 당신이 그런 것입니까? 주인이야. 당신이 뿌린 것입니까?’

이런 얘기를 해요.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 선하신 분 맞습니까? 어떻게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이렇게 악하고 불의한 일들이 많습니까? 이 가라지와 이 악한 일들은 어디에서 온 겁니까? 라고 물어봐요. 주인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인이 대답하되 원수가 뿌렸구나. 원수가 뿌렸다.

여러분 원수가 아까 이삭을 공격하였던 그 배후에 이 악한 대적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원수가 그리했는데 원수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오해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도록 그 우물이 막히도록 하는 아주 교묘하게 우리를 속이는 존재가 바로 사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그리하였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악한 사탄이 그렇게 만들었구나 라고 주는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죠. 여러분들 우리의 삶에 이런 원수가 뿌려놓은 잡초와 가라지와 흙더미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번 이것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의심이 막 일어나고 두려움이 일어나고 분노가 일어나고 심한 죄책감, 우울함, 다툼, 누군가를 시기하는 마음, 대적하는 마음 이런 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주셨을까요? 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원수가 그리하였구나.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생각 속에서 미움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그것이 씨앗이 자라서 결국에는 열매로 맺혀지게 된 것이죠. 여러분 정말 우리가 주의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긍정적인 믿음 정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하실 수 있다는 믿음도 있지만 부정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하나님. 하셔도 안 돼라는 그런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 중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시더라.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아 믿지 않는 믿음도 있구나. 부정적인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믿지 않는 이상이 여기시면서 예수님이 오셔도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그런 병든 믿음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민수기에 그런 얘기가 나오죠. 우리는 광야에서 죽고 말 거야. 우리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거야. 그렇게 믿으니까 못 들어간단 거야. 그런 병든 믿음이 사람들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말만 생각으로 믿으면 말을 선포하고 믿으면 생각을 해야 되고 그렇게 말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말하는 대로 내가 너에게 들려주리라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고, 말씀을 근거로 선포하는 이 믿음의 습관이 우리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중요한 성장의 원리가 있는데, 여러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단락이어서 67절인데요. 시작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기를 하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아멘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거예요. 믿음을 심으면 그 믿음의 역사를 거두게 되고 부정의 믿음을 심으면 부정한 안 된다는 것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뭘 심어줄 거야? 우리 안에 미운 생각, 안 된다는 생각, 악한 생각, 낙심. 자신, 두려움, 열등감 이런 것을 계속 심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그것을 점검해야 돼요. 내 안에 지금 악한 마귀가 뿌려놓은 생각이 무엇인가? 그 생각이 결국에는 마음으로 심겨지고 그 마음에 심겨진 것이 의지가 발동하여 행동으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생각 속에 마귀가 심어준 것이 무엇인가를 판별해야 됩니다. 여러분 다른 유다가 예수님 팔 때 마귀가 유다에게 예수님 팔때 뭘 넣었어요? 생각을 넣었다는 거예요. 처음엔 생각을 넣는데 그것이 마음의 소원이 되고 나중에는 행동으로 이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먼저 생각 속에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분별하고 주님 성령님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주시지 아니하는 악한 생각들과 마음이 있다면 주의 성령을 비춰주시고 제거하여 주시고 뿌리 뽑아주시고 그리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형통케 되어지는 그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때 그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이 새벽에 막힌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따라오겠습니다.

 

첫째, 막힌 우물을 파내야 한다.

멀지 않죠? 막힌 우물을 파내는 것입니다. 막힌 우물을 파내는 거예요. , 다툼과 신의와 대적함이 있었지만 이 이삭이요. 그 상황 속에 하나님 어떻게 내게 이러실 수 있지? 파는 우물보다 다 빼앗기도록 어떻게 이러실 수 있지?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여전히 계속해서 하나를 신뢰함으로 약속을 붙잡고 그 가나안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봤던 우물을 어떻게 합니까? 계속 파냅니다. 자 보십시오. 18절에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계속 파내는 거예요. 막혀있던 것을 파내는 거예요. 말씀으로 그것을 파내는 것입니다. 많은 더러운 것들이 있었겠죠.

그러나 하나하나 파내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결국에는 그의 삶 가운데 이어지는 것을 그가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랫동안 기도해온 기도제목이 아직 응답되지 않아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라합 그분들이 올라오신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셔야 됩니다. 이 이삭이라는 자녀는 어떤 사람인가? 이 우물을 파는 이삭이 20년간 자녀를 못갖죠. , 이상하게 아버지 아브라함도 사라도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하다가 가졌는데 아들 이삭도 리브가와 결혼해서 20년간 자녀를 갖지 못합니다. 야곱과 라헬도 마찬가지죠. 오랫동안 갖지 못하죠. 그러니까 이런 이슈가 있었던 거예요. 이 가정에.... 그런데 이 이삭이 그 20년의 세월 동안 하나의 신앙으로 기도합니다. 즉 막혀있었던 그 우물을 파내는 것이죠. 결국에는 그 자녀를 얻게 되잖아요. 쌍둥이를 얻게 되잖아요.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되잖아요. 여러분. 이 이삭의 그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에 오랜 시간 동안 응답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역사해 주실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분의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게요. 외국에 사시는 자매님이 온라인으로 저희 예배를 드리시다가 자신의 아픔을 좀 나눠주셨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셨는데 이 자매분인데 부모님의 손이 닿지 않는 해외로 유학을 가서 거기에서 살았는데요. 좀 방탕하게 사셨다고 해요. 죄송하지만 파티를 하고 심지어 마약에도 좀 손을 대고 그러다 보니까 좀 문란하게 사셨던 것 같습니다.

낙태도 여러 번 하셨던 거예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나중에서야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고 회개하고 눈앞에 매달렸지만 나중에 이 죄가 계속 그 마음을 짓누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하긴 했습니다. 외국인을 만났어요. 결혼을 해서 이제 임신을 했는데 유산이 되는 겁니다. 임신을 했는데 유산이 되는 겁니다. 결국 아이를 갖지 못했어요. 의사선생님 말씀에 낙태를 많이 해서 자궁이 상했다는 겁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이 상태로는 아기를 갖지 못합니다. 안 된다는 결론을 딱 받은 거죠. 이분이 저에게 이런 문의를 하신 거예요. 질문을 하셨어요.

 

목사님 제가 회개할 때 그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사해짐을 분명히 믿지만 제 몸에는 여전히 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죄가 범한 낙태의 죄에 대한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죄인 중인 죄인이시면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 같은 저에게도 다시 한번 엄마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실까요?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여러분 정말 정말 죄인이시죠? 우리 화종부목사님 표현대로 국가대표급 죄인이시죠? 파티에 마약에 낙태에 정말 하나님 입장에서 생명 주는 게 맞나? 너에게는 자격이 없다라고 할 사람이잖아요. 그가 그때 그게 죄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켰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너무나 간절한 거예요. 제가 뭐라고 답변을 해야 될까? 그때 떠오른 말씀이 다윗이였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가는 정말 끔찍한 거죠. 가정이 파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자녀가 잉태되었지만 결국에는 죽고 맙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다음에 출신 아들이 있었죠.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여기에 대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던 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래서 진정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시고 다시 주신 그 자녀의 이름이 여디디야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내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어요.

우리 자매님의 그 죄를 회개할 때 용서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죄인이지만 그러나 십사가에도 주님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여전히 사랑받는 따님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말씀을 드렸어요. 그분이 그 소식을 듣고 뭘 나가기 시작했냐면 여러분들처럼 새벽 기도를 나가는데 여러분 미국 교회는 새벽 기도가 없어요. 갔더니, 문이 잠겨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미국 교회 그 새벽에 그 문 앞에서 바깥이죠, 거기서 스스로 새벽 기도를 하는 거예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에게 다시 한번 엄마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저에게 생명을 주시면 이 아이를 정말 기도로 키우겠습니다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새벽마다 미국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어느 순간 기도가 제목이 바뀌더랍니다.

 

나의 자녀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우리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하면서 북한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또한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래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막 기도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여러분 이것이 누구의 기도입니까? 한나의 기도예요. 처음엔 자녀를 주세요. 라고 하다가 하나님이 자녀를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녀도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가 바뀌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분에게도 그런 기도가 바뀌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의 막혀 있었던 우물을 파내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던 중에 어느 날 마음의 이사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위안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제사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결국엔 그 해에 수개월을 지나고 11월에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을 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야기의 핵심은 기도했더니, 임신했다가 아니라 핵심은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시다라는 그 믿음이 사라지고 여전히 선하신 분이시지, 또한 그녀의 기도가 바뀌었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도 고백하기를 제가 원하는 것만 간구하던 부족한 기도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성숙한 기도의 자리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그분이 한국에 들어오셔서 저희 교회 등록을 하셨어요. 얼마 전에 베이비 블랙이 났는데 축하를 받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저는 그 과정을 다 알잖아요.

아 하나님은 정말 너무 좋은 분입시다. 정말 국가대표급 주인 같은 우리 우리일지라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그 충만한 은혜를 보여주시는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다시 한번 그분을 통해서 보면서 제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고 그 사랑을 그대로 믿는 받아들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래서 아까 뭐 해야 한다고요? 우물을 파내야 한다라고 했죠. 이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따라 하겠습니다. 파낸 우물은 믿음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채워야 한다. , 엄밀히 말하면 이 막히는 것을 제거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요. 말씀과 성령으로 그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역사가 일어나게 되죠. 어떤 역사가 일어나고 있느냐.

사라를 보시면 사라가 태가 열리지 않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창세기 18장 시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다음에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 너에게 아들이 있을 거야. 그녀의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라고 하는 믿음을 제거해 주시고 그다음에 뭘로 채워주십니까? 말씀으로 채워주셨어요. 내년 이맘때 너에게 자녀가 있을 거야. 내년이면 또 여러분들에게 자녀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 기가 막혀 있는 분들에게 사랑하는 딸과 아들 주님께서 주실 줄은 믿습니다. 사라가 그 약속을 받게 되는 거예요. 특별함에 돌보심이 있었던 것이죠. 또한 이 마가복음에 보면 혈루증 앓았던 여인이 있어요. 12년간 고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고침을 받지 못하고 모든 재산에 탕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선하지 않을 분 같아. 그런데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믿음을 선포하지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여러분 영어로 보면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he had been saying to herself. 자신에게 선포했다는 거예요. 자신에게 어떤 선포를 했냐면

내가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을 거야. 내가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을거야.’ 스스로에게 말씀을 가지고 선포한 거예요. 계속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죠? 딸아. 내딸아 주님은 그녀를 잊은 적이 없어. 주님이 나를 아실까? 예수님 처음 보는 여인 아닙니까? 그런데 내 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너의 병에서 놓여서 건강할지어다. 주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었어. 그녀가 병도 치유받고 구원도 얻게 되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혹시 우물이 막힌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으로 여러분들의 심령을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이 말씀으로 자신에게 선포하시고 그 말씀으로 나에게 고백하며 적용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여러분들의 상황 가운데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김미경 대표라는 분이 계시죠? 독설 또 김미경의 마음속 이런 책을 쓰신 분인데 몇 년 전에 이분이 회심을 합니다. 어머님이 독실한 신앙인이셨는데 어머님이 계속 딸을 전도하기 위해서 얘기를 하면 엄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 얘기하지 마 이런 식으로 거절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이분이 왜 회심을 했느냐.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 5남매를 위해서 책을 썼어요. 각각 자녀에게 바치는 편지와 같은 책입니다. 그것도 병상에서 누워서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하나 다 남겨주신 거예요. 대단한 어머니이시죠. 그런데 이 어머니가 쓰신 내용의 공통 주제가 뭐냐면 너희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살아야 한다. 이거였습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시냐면 이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또한 결혼한 이후에도 아들을 낳지 못해서 아유 아들도 낳지 못하는 저 불쌍한 홍순이 이런 식으로 놀림을 받았던 거예요. 시골에서 양장점이나 하는 홍순이 이런 식으로 놀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런 얘기 듣고 나면 돌아와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을 근거로 선포했답니다.

딸만 길러놓고도 아들보다 더 잘 기를 홍순이, 작은 양장점을 길러도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운영할 수 있는 홍순이... 이러면서 믿음의 말을 계속 선포하면서 지우고 다시 썼다는 거예요.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자녀들아 한 가지만 기억하여라. 너희가 누군지를 알고 살아라. 너희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녀들이다. 잊지 말라. 어제 누가 너를 욕하고 너를 끌어내리고 너희를 모욕하였으면 그것을 다 받고 있지 말라. 아침마다 그것을 다 파내고 지워라. 그리스의 이름으로 지우고 다시 써. 나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녀다. 그것을 자녀들에게 다 써주는 거야. 김미경 대표가 말하기를 우리 엄마 가방끈 짧은데 공부만이야.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시다.

우리 어머니가 훨씬 더 지혜로우시다라고 하면서 그가 결국엔 그 어머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라는 그런 귀한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어머니도 이 신앙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블레셋이 뿌려 넣는 그 쓰레기와 흙더미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야. 그것을 파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러분 악하고 절망적인 생각들을 나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끊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비록 정말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여러분들을 잊지 마시고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결론으로 갑니다. 자 아까 이삭이 우물을 팠는데 하나는 에섹 다툼이라는 의미의 에섹또 대적한다는 싯나라는 우물을 팠어요. 자 그 다음에 판 우물이 무엇이냐?

르호 무엇입니다. 이게 중요한 표현이에요. 르호. ‘르호봇은 하나님께서 넓혀주셨다는 의미입니다. 22절에 나오는데요.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좁은 곳에서 막 싸우다가 이제는 넓은 곳에서 싸우지 않고 이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르호봇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께서 넓게 하셨다. 지경을 넓혀주셨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지경이 넓어졌기 때문에 좁은 곳에서 그렇게 썰어 싸울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평안을 주셨다. 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넓혀주시다. 내게 평안을 주셨다. 하나님 그동안 참 많은 공격이 있었는데, 이제는 저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이제는 저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라는 고백이 르호봇이라는 것이죠.

 

그 이삭이 이 고백을 하나님께 하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이 르호봇을 보면서 저에게도 불신앙의 우물을 파내며 이 르호봇의 은혜를 줬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미국에서 11년 동안 이민생활을 하다가 또한 이민교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캔자스시티라고 하는 캔자스라는 지역은요. 한인이 4천 명이 되지 않습니다. 땅은 굉장히 광활한 곳이긴 하지만 이민 사회에서는 굉장히 좁은 사회였죠.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목회자들의 무덤, 들어가는 곳에 12명의 성도와 함께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참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아내도 순간순간 이곳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제가 어느 날 짐을 막 쌌습니다.

아내가 뭐라고 물어봐요? 당신 뭐해? 나 한국 돌아가려고.... 뭐하는 거야? 당신 왜 그래? 아내가 붙잡아줘. 어느 날 아내와 짐을 쌉니다. 당신 뭐해? 한국 가려고. 당신 뭐하는 거야? 감사한 거는 둘 다 싼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유혹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좌절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사명지를 끝까지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어요. 어느 날 새벽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성도들이 별로 없으니까 저와 아내만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분이 새벽 기도에 딱 오셨어요. 그 한 분을 놓고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한 명이라도 실망하지 말아라. 천하보다 귀한 나의 사랑은 자녀다. 그러니까 그 1명이 천 명 모였다. 생각하고 만 명 모였다.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해라.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처음엔 그게 잘 안 됐어요. 1명이 1명이지 그게 천명입니까?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하나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영혼이니까. 이 새벽에 또한 한여성년 추배 때 몇 명이 오든 정말 이 자리에 가득 아니 천군천사가 함께 얘기한다는 그 마음으로 그렇게 예배를 준비하면서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지었는데 깨어진 가정들이 살아나기 시작해서 여러분 사람이 안 간다고 이러십니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것도 블레셋에서 뿌리는 흙더미일 수 있어요. 저는 이민 목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변하는 것, 가장들이 회복하는 것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정말 주 안에 사신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주가 술 주자입니다.

 

무려 40년간 술 중독에 빠진 남자분이 계셨어요. 이 남자분이 어느 날 저희 교회에 오시는 거예요. 아내가 이 남편을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술 중독에 그렇게 술 주정을 해도 이 남편을 버리지 않고 남편이 변할 수 있다. 주님을 정말 만나면 변한다라는 등 믿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 남편이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저 저 뒷구석에 예배는 드리러 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맨 위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어느 날 성가대에 서 있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알고 봤더니, 사정이 이랬습니다. 저 뒤에서 아내랑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그 아내 집사님이 예배를 드리면, 말씀을 드리면, 은혜가 될 때 아멘 아멘 이런 거예요. 그게 꼴보기 싫어가지고 그냥 성가대 가서 앉아있는 거예요. 그게 싫어가지고. 그래서 감사한 게 노래를 좋아하셔가지고, 술을 마시면 또 노래를 해야 되잖아요.

노래를 좋아하셔가지고, 성가대에 선 거예요. 그런데 이것도 음치야. 또 음치이지만 그래도 그분이 선 자체가 하나의 굉장한 메세지입니다. 그 지역사회에 그분은 변하지 못해. 그분은 술을 끊지 못해라는 것이 파다했던 시기에 성가대섰다는 것만으로 교회에 소문이 빠져나가지고 그걸 구경하러 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거든요. 그게 사실이냐 이러면서 그랬던 분이 찬양을 하면서 가사를 읽으면서 은혜가 되자 이게 여러분 가사에 말씀의 능력이 있어요. 여러분 마음이 조금 변하는 거예요. 부드럽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은요. 금년 성령집회를 드리는데 그분이 오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예배를 드리다가 그분이 오셔가지고, 그분을 계속 쳐다봤어요. 이렇게 그분이 왔어. 이러면서 이분이 왜 오셨는가? 코로나가 터지고 사업이 다 안됐어요. 레스토랑을 하셨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비슷한 시기에 술만 생각하면 술이 싫지고 겁나 머리가 아프고 토할려고 해요. 이게 뭐 자기가 한 거겠습니까? 그렇게 된 거죠. 그렇게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토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모집에 9개월간 딱 12명만 제자훈련 시키겠습니다. 모집을 했는데 11명까지 모집이 되고 1명이 모집이 안 됐어요. 제가 그렇게 광고를 했더니, 자기가 그 사람이라면서 지원을 하시는 거예요. 9개월을 매주 훈련하는데 진짜 단 한 번도 안 빠지시고 개근을 하셨어요. 수료를 하시는 날 그분이 이렇게 고백을 하신 거예요. 12명의 모집을 할 때 한 명이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 그 한 명이 나거나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 그렇게 믿어졌습니다. 저는 사실 40년간 질질 끌려다니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터지면서 가게 문을 여닫는데 그때부터 놀랍게 40년간 마시던 술이 싫어지고 술이 겁나고 술 생각만 하면 머리 아프고 토해내고 싶어졌습니다. 과거에 사업이 크게 망하고 고난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누군가 저를 위해 항상 돌봐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이 있었음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정말 예수님을 알았으니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을 따라가며 제자를 삼는 제자로서 겸손과 소박함과 사랑과 풍요를 베푸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합니다. Candle Village 캔사스에 어디 이런 루머가 있었어요. 예수님이 오셔도 안 된다. 그런데 그 12명 했던 교회가 50, 100, 150, 200. 그렇게 하나님께서 회복을 시켜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넓혀주신 것이죠.

그러나 진정한 르호봇은 죽어가던 가정들이 평안을 누리게 되고 다툼이 그친 자리에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르호봇이었습니다. 누가 그 가정을 살렸습니까? 누가 그 교회를 살렸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려주신 것이죠. 어느 날 제가 목회를 하는데 어떤 승무원님이 저에 대한 꿈을 꿈 거를 전해주셨어요. 영어로 이렇게 얘기해요. ‘당신은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게 될 겁니다.’ 또 다른 분이 꿈을 꾸신 후로 저한테 얘기를 하셨어요. 목사님은 언젠가 더 넓은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수천 명에게 말씀을 전하게 되실 거예요.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저의 목회지는 여기이고 저는 소박하게 목회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정말 2021년에 5월에 지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선한목자 교회에 담임이 됐다는 청빙자의 전화가 왔어요.

 

제가 그때 꿈 생각이 났습니다. 그 두 분이 말씀해주신 것이 생각이 났어요. 하나님께서 다른 곳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면서 많은 분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해 주시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 부담은 됐지만 제가 결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끌어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일주일간 기도한 이후에 순종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온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제가 한개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죠. 러나 돌아보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한 가지 잘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 오셔도 캔자스는 안 돼. 그 불신앙을 거절하는 것. 예수님이 주인이 됐으면 망한 뒤에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것을 믿고 선포하며 기도했던 것.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인 나라라고 하는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구나 라는 그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르호봇은 작은 교회를 섬기다가 큰 교회로 옮겼다. 그것이 아닙니다. 저의 르호봇은 무엇이냐면 결국에는 그 복귀 현장 가운데 수년간 다툼이 있었던 교회의 다툼이 그치고 평안히 임하는 것 그것이 르호봇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르호봇은요. 여러분 더 큰 넓은 자리로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분에게는요. 하나님께서 노래를 주셔서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요, 더 넓은 지경은 아닐지라도 그 자리에서 다툼이 그치고 하나님 평안이 부어지는 그런 거르 주실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역사하실 때 그 맡겼던 우물 주님과의 관계가 또한 하나님 그 보고 열려지고 평가하게 되어서 진정한 나라를 세워나가는 하나의 사람들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르호봇의 은혜가 막힌 우물물이 뚫려서 여러분들의 삶의 가정 가운데 자녀들 가운데 흘러넘치는 하루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의 메시지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함께 우리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특새 네 번째 날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셨음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사모하지만 마음에 답답한 분들도 있었을 것이고. 주님 또한 기도가 잘 되지 않는 분들도 주님이 있습니다.

주여 이 시간에 그 막혀 있던 우물이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완전히 뚫어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블레셋이 뿌려놓은 흙더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도 모르게 받아들였던 도전적인 생각과 불신의 또한 시기와 질투와 미움의 마음들, 주여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깨끗하게 치워주시고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을 심게 하여 주시고 붙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친히 인도하여 주셔서 에색과 싯나는 결국에는 르호봇이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 하나님께서 넓혀주시는 끝 지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경산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누군가가 다시 달라 하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함을 주시옵시고, 주여 그들을 오히려 축복하며 기를수 있는 주여 하나님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는 우물도 내어주며 또 하나는 새로운 터뜨려주셔서 가는 곳마다 막힌 곳이 열려지게 하여 주시고 가는 곳마다 세계를 열려지는 웨이메이커 되신 주님만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는 우리 경산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특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욱더 날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함이요. 주님의 충만한 생수의 강이 배에서 절로 나와 경산 지역만이 아니라 대구 지역만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과 열방에까지 그 축복을 흘려보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영광 올려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중요한 군사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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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c 2026.05.21 (13 명 읽음)

168. 4일차] 르호봇의 은혜

아브라함의 사명이 “떠나는 것”이었다면, 이삭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삭은 흉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머물라 하신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창26:23,6). 하나님은 그런 이삭에게 복을 주셨지만(창26:1214),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막고 빼앗으며 다툼과 대적을 일으켰습니다(창26:14~15). 이는 우리 안의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 의심과 두려움, 분노와 미움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 우물을 막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막힌 우물을 다시 파내야 합니다(창26:18,22). 그리고 그 파낸 우물을 믿음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대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말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말씀(창26:3~4)을 붙들며 사명의 자리에 머무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르호봇의 은혜처럼 우리의 삶을 넓히시고 평안과 형통의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 안에서의 제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과 중요한 결단의 순간마다 하나님은 늘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고, 저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영적 우물이 막히던 때에도 말씀과 기도로 막힌 인생의 우물을 다시 파내게 하시고, 그 우물을 말씀과 성령으로 채우심으로 르호봇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의 영적 우물을 막는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절망과 부정적인 생각, 우울감과 불안, 두려움이 마음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끝까지 사명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번 특새를 통해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작정한게 있습니다. 매일 받은 은혜의 말씀을 기억하고자 은혜 나눔을 하고, 매일 작정한 시간에 중보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선포하며 사명의 자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제 개인적인 기도제목을 넘어 기도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르호봇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이번 특새를 통해 우리의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간증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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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은혜♡ 2026.05.21 (12 명 읽음)

167. 답답한 마음을 믿음으로 선포하라!

오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깊이 만져주셨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빼앗기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우물을 팠고, 결국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르호봇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문득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보다 제 생각을 더 의지하고, 기도보다 걱정을 앞세우며, 믿음보다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안의 막힌 우물을 내가 다시 열겠다."

그래서 오늘 새벽, 답답함과 염려를 내려놓고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막힌 길을 여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응답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응답의 역사를 또 다시 경험하게 해주세요."

눈앞의 상황은 여전히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삶도 그랬습니다.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마다 하나님은 길을 내셨고, 끝이라고 여겼던 자리에서 새로운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 계시기에 다시 믿음을 선택합니다.

이제 제 안의 두려움과 염려, 불신앙의 흙들을 걷어내고 믿음의 우물을 깊이 파기 원합니다.

내 안의 막힌 것들을 해결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르호봇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하리로다." (창세기 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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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우 2026.05.21 (16 명 읽음)

166. 내 삶의 이유

특새 4일차

콰이어로 처음 서보는 것도 은혜인데 훈련생 특송에서 싱어로 또 섬기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모든것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심으로 여기까지 올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콰이어로 강단에 섰을때 수많은 성도들의 눈을 보았다

성도들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바램과 사모하는 마음을 보았다

누군가는 얘기하겠지

특새는 잠시일뿐,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흐려지고 또 똑같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신것 같다

행복하다^^

그마음들이 전도로 이어지길 기도하며

오늘도 주위사람들에게 행축 초대장을 돌리고 있는 내모습도 참 감사하다

 

담임목사님 설교말씀이 생각납니다

"왜 우리는 전도대상자가 없을까요?

베스도와 같이 적대적인 사람,

아그립바와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는사람,

버니게처럼 무관심한 사람

다 괄호밖으로 재껴놨기 때문이죠

우리는사람을 가렸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도 역시 태신자 였어요"

 

죄가운데 있는 우리는 우물을 계속 파야한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르호봇(넓은곳)'이 될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기쁨이며 나의 참 소망이시며

영원하신 생명이십니다

그는 내삶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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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2026.05.21 (14 명 읽음)

165. 한나의 눈물 너머

새벽 공기를 가르며 강단 초청 기도회로 향하는 발걸음엔 말로 다 못 할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꼬박 일 년 넘게 아내와 마주 앉아 매달려온 기도의 제목, 우리 가정에 둘째를 허락해 달라는 소망 하나를 붙들고 주님 앞에 섰습니다.

기도회에 앞서 김다위 목사님은 창세기 26장을 통해 우리 영적 배관을 점검해주셨습니다.

"기도가 막혔다면, 내 안에 사탄이 뿌려놓은 불신앙의 흙더미부터 치워야 한다"는 말씀이었지요.

"하나님은 내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거나 "하나님은 나에게 선하지 않다"는 오해의 흙을 걷어내고, 말씀과 성령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진정한 '르호봇'은 나만을 위한 간구를 넘어, 이웃의 아픔을 품는 성숙한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설교의 울림을 안고 드디어 라함초정기도회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습관처럼 내 아이, 우리 가정의 기쁨을 위해 입술을 뗐는데, 문득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불쑥 올라왔습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내 안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주님, 저희에겐 이미 승호라는 귀한 선물이 있지 않습니까.'

 

입을 떼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둘째를 향한 간절함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아니면 함께 등단한 이들의 애틋한 사연이 내 마음을 두드린 것일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나만을 위한 간절함을 넘어,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귀에 들려왔습니다.

손을 맞잡고 기도하던 아내의 어깨가 더욱 깊게 들썩였습니다.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스쳤지만, 내 안에서 솟구치는 기도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 혹여 저희에게 둘째를 주시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대신 저분들의 간절한 기도는 꼭 들어주십시오."

분명 혼자만의 독백이었을 텐데, 내 기도가 공중을 타고 흐를수록 아내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같은 주님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연결되고 있었나 봅니다.

 

목사님의 안수기도까지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발걸음 끝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꼬리처럼 따라붙었습니다.

'아차, 내가 너무 앞서갔나? 나도 챙길 건 챙겨야 하는데!' 기도를 마친 뒤 밀려온 인간적인 욕심과 "정말 둘째 안 주셔도 괜찮은 건가?"라는 엉뚱한 불안함이 묘하게 교차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습니다. 주님은 나의 간절함도, 곁에 있는 이들의 아픔도 동시에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까.

나의 기도 순서가 주님의 능력에 제한을 두는 것도 아닐 텐데, 제가 괜히 주님의 일처리에 참견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 좁은 마음을 뚫어 이웃을 담게 하신 그 은혜가, 결국 우리 가정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실 것이라 믿습니다.

 

비록 당장 제 손에 응답이 쥐어지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나를 내려놓는 훈련, 그 과정 자체가 이미 복된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우리 가정의 둘째와 이웃의 소망이 함께 열매 맺는 그날을 즐겁게 기다려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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