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종부목사님의 설교가 복음과 구원론의 핵심과 정수를 차분하게 풀어가시며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신가에 대한 강해설교였다면 김다위목사님은 마치 외과의사처럼 매스를 들고 우리 신앙의 문제들을 하나씩 도려내는 수술과 같은 설교를 하시네요. 녹음된 말씀을 수정하면서 정말 책상위에서 적어내려간 설교가 아니라 자신의 삶속에서 직접 도전받으며 기도하고 또 체험한 삶의 증거를 중심으로 살아있는 설교를 해주셨네요.
'사명의 땅에 거하라...'
'불신앙의 우물을 파내라'
'그 우물을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라'
주님의 부르심의 자리, 사명의 땅에 끝까지 붙어서 약속의 성취를 맛보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니다.
<특새 넷째날 설교>
불신앙의 우물을 뚫어야 한다
김다위목사님
특새 네 번째 날 정도 되면 보통 숫자가 줄어드는데 오늘 보니까 빈자리가 없는 걸 보니까 정말 우리 특새 승리하신 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제 비가 오고 오늘도 살짝 비가 오는데 제가 얼마 전에 이제 뉴욕을 갔다 왔는데 그때도 비가 왔어요. 왜냐하면, 비를 몰고 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길 믿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틀 정도 출석해 보니까 이렇게 분위기를 알 것 같습니다. 군대 분위기가 좀 있어요. 뭔가 군 장교 출신 리더쉽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최강 경중, 최강 예수 굉장히 인상 깊게 제가 봤는데 오늘도 느낌이 비슷해요. 나이만 1~2살 정도 많으시더라도 느낌은 거의 같습니다. 굉장한 에너지와 열정 오늘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로서는 오늘이 마지막 말씀인데 오늘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 믿음으로 반응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수많은 은혜와 복이 여러분들의 삶가운데 부어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어제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면 오늘은 좀 이삭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사면은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본토 아비친초를 떠나는 것. 그렇다면 이삭의 사명은 무엇이냐면 부르신 곳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삭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끝까지 지신 것 바로 이삭의 사명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사람마다 사명이 다 다르지만 특별히 오늘 머무는 것에 대한 또 막힌 곳을 뚫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어느 곳에 머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항상 편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해하는 세력도 있고 또 막아서는 세력도 있고 공격하는 대적도 있기 때문에 어떤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기란 참 쉽지가 않죠. 여러분 이삭도 마찬가지였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땅이라는 곳을 떠나지 말라 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그 땅에 흉년이 벌어집니다. 가능한 땅에 흉년이 오니까 여러분 흉년이 오면 버틸 수가 있겠습니까? 쉽지가 않죠. 그래서 1절에 보면요. 아브라함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었다는 겁니다. 흉년이 드니까 음식이 없기 때문에 곡식이 없기 때문에 그때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는 그래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경험합니다. 비슷한 경험을 또한 이삭이 하는 거죠. 흉년이 드니까 또 점점 내려가는 거예요. 남쪽으로...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2절,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에 거주하라, 경산땅에 거주하라, 대구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신에게 주리라 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준 사명지에 머물면 내가 너에게 복을 줄 거야.
이 이상에게 주어진 사명은 어찌 되었든 부르신 곳에서 끝까지 버텨내는 사명. 이 머무는 사명이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신 것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은 곳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의 처소를 떠난 자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반역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사탄입니다. 천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였다가 처소를 떠났다가 결국에는 사탄이 되어버린 무리들이 있었던 것이죠. 또한 직분을 받았지만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고 떠난 자가 누굽니까? 가롯 유다였습니다.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자신의 부르심을 떠난 자들 이야기가 성경에는 곳곳에 나오죠.
무엇보다도 창세기 맨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나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 그들에게 아담을 찾으시며 하나님께서 묻는 말씀이 이거였지요.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들은 어디에 있으십니까? 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이 질문은 우리 어떤 장소 개념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 뭐냐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지 않고 말씀 안에 있지 않고 기도의 사명의 자리에 있지 않고 너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시는 겁니다. 오늘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를 지킨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선택하는 것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에 머물고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나는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이야기인데 저희 아버지는 이 경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아마 동쪽으로 한 2시간 정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건천이라고 하는 시골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났었습니다. 그래서 6.25가 좀 지난 1953년쯤에 저희 아버님이 해방둥이신데, 저희는 할머니죠. 저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당시에 포목장사를 하러 장터에 가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장사를 하시고, 또 저희 아버지는 할 일 없이 그 동네에서 놀다가 이제 장사를 마치고 해가 지기 때문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트럭에 짐을 싣고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지역에 아버님의 외삼촌이 살고 계셨어요. 수요일이었기 때문에 저녁이었기 때문에 지금 가지 말고 밥을 먹고 예배를 드리고 자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라고 권면을 하신 겁니다. 이미 저희 아버님은 트럭에 탄 상황이었고 짐도 실은 상황에서 저희 할머님이 고민을 한 겁니다. 어떻게 할까? 트럭을 타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내일 돌아가야 할까? 중요한 선택이죠. 중요한 짧은 고민의 순간 속에 할머니께서 그러면 남아서 예배 드리지 뭐 하고 다시 트럭에서 탔던 아들을 내려놓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사이렌이 울리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그 타려고 했던 트럭이 무장공비의 공격을 받은 거예요. 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산속에 남아 있었던 그런 무장공비들이 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트럭을 습격하여 다음날 아침에 다른 차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어제 타려고 있던 차가 비탈길에 굴러서 불에 타 있고 짐들은 널브러져 있고 많은 사람들 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일 어제 그 트럭을 탔더라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할머니께서 선택을 잘하신 것이지요.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것. 장사보다 더 중요한 것,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운명을 갈랐는지 저는 그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으면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또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릴 적부터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바로 이삭에게도 그러한 고민이 있었을 겁니다. 흉년의 시기에 내가 약속의 땅을 떠나야 하느냐, 내가 살 길을 내가 혼자 찾기 위해 내려가야 했냐 말아야 했냐 고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그 가나안은 떠나질 않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이삭에게 복을 주신 겁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라는 그것을 지켰을 때에 크신 은혜를 주셨던 것이죠. 문제는 그 다음에 또 시작이 됩니다. 그런 흉년의 시기에 복을 받았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는 거예요.
너놈의 이방 사람이 와서 이렇게 잘 되느냐. 어떻게 너만 이렇게 잘 될 수 있느냐 원래 그 땅은 우리 땅이다. 원래 그 우물은 우리 것이다. 이러면서 와가지고 자꾸 뺏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해를 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14절, 15절이죠.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잘되면 박수 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이삭이 그런 시기를 받는 거예요. 15절 그 아버지 아브라함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안타깝죠? 우물이 얼마나 귀한 겁니까? 당시에 지금도 지금은 우리가 물 관계 시스템이 잘 돼 있긴 하지만 고대 근동에서 사막 지역의 우물은 생명과 같은 곳인데 그것을 흙으로 메웠다는 거예요. 그렇게 막 가는 사람들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 이거예요. 내가 못 되면 너도 못 돼야 된다.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 우물을 막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삭은 그 자리를 피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물론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다른 우물을 찾아서 또 우물을 파냅니다. 또 그러면 다른 그 블레셋의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서 또 그 우물을 메꾸는 거예요. 또 뺏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우물 이름을 이삭이 짓는데 하나는 ‘에섹’이다. 무슨 뜻이냐면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시기하여 다투었다. 에섹이라는 우물을 짓습니다. 또 빼앗아 가서 다른 우물을 봤더니, 그 이름은 또한 ‘싯나’라고 짓습니다. ‘싯나’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면 대적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사탄과 의미가 같습니다. 어원이 같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 이삭이 그렇게 계속 잘 되자 빼앗고 빼앗고 공격하는 그 배후에 사탄이 있었던 것이지요.
악한 영의 공격이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삭이 공격을 당한 거예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주위로부터 이런 공격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모함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공격을 당하여 나의 사명지를 떠나고 싶다. 이런 관계를 다 떠나고 싶다. 심지어 신앙도 뭐고 이제는 정말 그만두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삭이 그러한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거에요. 이삭에게서의 이 우물을 구원의 우물이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죠. 우물에서 만납니다. 그러면서 물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는데 이 우물이 무엇이냐 생수가 무엇이냐 이렇게 얘기를 하죠.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즉 그 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종합해보면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의 우물이고 그 물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됐다고요? 막혔다는 것입니다. 그 대적이 이삭의 우물을 막아서 그가 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생명 어떤 성령의 생수를 마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었던 것이죠. 여러분들 혹시 우리 오늘 특새에 오신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혹여나 기도가 안 되는 분 있습니다. 기도가 잘 될 때가 있지만 잘 안 될 때도 있죠. 이상하게 예전에는 1시간 기도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10분밖에 안 됐어. 20분밖에 안 됐어요. 뭐가? 기도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답답한 거죠. 가정의 불화가 있습니다. 부부 간의 관계가 틀어져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멀어져 있는 그런 가정들도 있을 수 있지요. 말씀이 믿어지고 그냥 내 마음속에 우러나는 마음으로 아멘이 되야 되는데 아멘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아멘이 아니라 노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저 말씀은 저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느껴질 때도 있죠. 여러분들 원인이 무엇일까? 우리의 영혼의 깊은 것에 우물이 무엇인가에 의해서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지금 관계가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이 블레셋이 뿌려놓은 흙더미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어떤 것이냐 이런 게 있어요. 제가 미국에서 이민교회의 목회를 할 때에 한 청년과 대화를 하는데 이 청년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냐? 귀하다.’
‘그런데 저는 그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간섭하는 분임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왜 그러냐 했더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세상에 왜 이렇게 고통과 고난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더라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전히 전쟁과 기근이 많은 걸 보니 하나님은 계셔도 이 세상에는 간섭하지 않는 분 같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신론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18세기 영국에 퍼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개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웨슬리가 그것을 반박하고 깨기 위해서 웨슬리 부흥을 일으켰던 것이거든요. 이런 것을 믿는 사람들 왜 그런가?
사탄이 뿌려놓은 흙더미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뭔가 막혀있는 것이 있는 것이죠. 자신의 삶에 풀어지지 않는 고난의 문제를 보면서 하나님은 내 삶에 역사하지. 맞는 것 같다라고 하는 부모 세대에서 뿌려놓은 이 쓰레기를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여러분 다음 세대 안에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인 거예요. 믿음의 부모 세대는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어요. 경험이 있어요. 기도 가운데 뜨겁게 하나님 만난 체험이 있지만 다음 세대는 전해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삶에 역사하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을 보면서 이런 청년처럼 하나님의 마치 시계를 만들어 놓고 전혀 간섭하지 않는 그 시계공처럼 그렇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버리는 이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질 때가 많이 있는 것이죠.
또한 블레셋이 뿌리는 흙등이 또 어떤 종류가 있냐면 오늘 이것이 핵심인데 하나님이 선하신데,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인가? 다른 분에게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하나님이 선하신 것 같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언제 한번 예배를 드리는데 지난번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책들을 이제 예배에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어떤 분이 저에게 찾아오셨어요? 목사님 얼마 전에 예배 때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죠. 제가 들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전에 나 있던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고 리더십에게서 큰 실망을 하게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을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이후에 문제는요. 더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질병이 찾아오고 삶은 더 피폐해지고,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무엇이냐면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불신 때문에 내 영혼이 메말라 가고 우리 가정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음을 말씀을 듣다가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회개하시면서 하나님, 아니 목사님 제가 들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저를 위해 좀 기도해 주세요. 펑펑 우시면서 이렇게 기도를 받으러 오시는 거예요. 제가 그분을 얼마나 눈물로 기도했는지 몰라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가 이런 의구심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를 들면 아브라함 아내였던 사래가 이를 갖지 못했을 때 어떤 심정이 있는지를 아십니다. 성경이 나와 있어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과 동침하라.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을 주었지만 내게는 생명을 주지 않으셨어..’
어떤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서운한 마음이 느껴지죠?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둘 셋 넷 이렇게 주는데 왜 저에게는 한 명도 주지 않으십니까? 여호와께서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여종과 동침하여 태를 이어가십시오.
여러분 정말 그렇게 하라는 겁니까? 아니죠. 서운한 것을 표현한 것인데 또 그걸 굳이 듣고 또 아브라함도 또 자녀를 낳잖아요. 그래 가지고 또 문제가 발생하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그런 것이냐 이러면서 이런 가정의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있어서 결론을 내리기를 하나님은 내게 선한 분이 아니었어 라는 그 마음이 그 영혼을 굉장히 아프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 씨뿌리는자의 비유가 나오죠. 그러면서 종들이 말하는 거예요.
‘주인이시여 우리가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이 가라지는 이 잡초는 어디서 자란 겁니까? 당신이 그런 것입니까? 주인이야. 당신이 뿌린 것입니까?’
이런 얘기를 해요.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 선하신 분 맞습니까? 어떻게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이렇게 악하고 불의한 일들이 많습니까? 이 가라지와 이 악한 일들은 어디에서 온 겁니까? 라고 물어봐요. 주인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인이 대답하되 원수가 뿌렸구나. 원수가 뿌렸다.
여러분 원수가 아까 이삭을 공격하였던 그 배후에 이 악한 대적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원수가 그리했는데 원수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오해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도록 그 우물이 막히도록 하는 아주 교묘하게 우리를 속이는 존재가 바로 사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그리하였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악한 사탄이 그렇게 만들었구나 라고 주는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죠. 여러분들 우리의 삶에 이런 원수가 뿌려놓은 잡초와 가라지와 흙더미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번 이것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의심이 막 일어나고 두려움이 일어나고 분노가 일어나고 심한 죄책감, 우울함, 다툼, 누군가를 시기하는 마음, 대적하는 마음 이런 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주셨을까요? 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원수가 그리하였구나.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생각 속에서 미움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그것이 씨앗이 자라서 결국에는 열매로 맺혀지게 된 것이죠. 여러분 정말 우리가 주의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긍정적인 믿음 정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하실 수 있다는 믿음도 있지만 부정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하나님. 하셔도 안 돼라는 그런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 중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시더라.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아 믿지 않는 믿음도 있구나. 부정적인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믿지 않는 이상이 여기시면서 예수님이 오셔도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그런 병든 믿음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민수기에 그런 얘기가 나오죠. 우리는 광야에서 죽고 말 거야. 우리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거야. 그렇게 믿으니까 못 들어간단 거야. 그런 병든 믿음이 사람들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말만 생각으로 믿으면 말을 선포하고 믿으면 생각을 해야 되고 그렇게 말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말하는 대로 내가 너에게 들려주리라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고, 말씀을 근거로 선포하는 이 믿음의 습관이 우리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중요한 성장의 원리가 있는데, 여러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단락이어서 6장 7절인데요. 시작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기를 하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아멘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거예요. 믿음을 심으면 그 믿음의 역사를 거두게 되고 부정의 믿음을 심으면 부정한 안 된다는 것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뭘 심어줄 거야? 우리 안에 미운 생각, 안 된다는 생각, 악한 생각, 낙심. 자신, 두려움, 열등감 이런 것을 계속 심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그것을 점검해야 돼요. 내 안에 지금 악한 마귀가 뿌려놓은 생각이 무엇인가? 그 생각이 결국에는 마음으로 심겨지고 그 마음에 심겨진 것이 의지가 발동하여 행동으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생각 속에 마귀가 심어준 것이 무엇인가를 판별해야 됩니다. 여러분 다른 유다가 예수님 팔 때 마귀가 유다에게 예수님 팔때 뭘 넣었어요? 생각을 넣었다는 거예요. 처음엔 생각을 넣는데 그것이 마음의 소원이 되고 나중에는 행동으로 이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먼저 생각 속에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분별하고 주님 성령님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주시지 아니하는 악한 생각들과 마음이 있다면 주의 성령을 비춰주시고 제거하여 주시고 뿌리 뽑아주시고 그리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형통케 되어지는 그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때 그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이 새벽에 막힌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따라오겠습니다.
첫째, 막힌 우물을 파내야 한다.
멀지 않죠? 막힌 우물을 파내는 것입니다. 막힌 우물을 파내는 거예요. 자, 이 다툼과 신의와 대적함이 있었지만 이 이삭이요. 그 상황 속에 하나님 어떻게 내게 이러실 수 있지? 파는 우물보다 다 빼앗기도록 어떻게 이러실 수 있지?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여전히 계속해서 하나를 신뢰함으로 약속을 붙잡고 그 가나안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봤던 우물을 어떻게 합니까? 계속 파냅니다. 자 보십시오. 18절에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계속 파내는 거예요. 막혀있던 것을 파내는 거예요. 말씀으로 그것을 파내는 것입니다. 많은 더러운 것들이 있었겠죠.
그러나 하나하나 파내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결국에는 그의 삶 가운데 이어지는 것을 그가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랫동안 기도해온 기도제목이 아직 응답되지 않아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라합 그분들이 올라오신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셔야 됩니다. 이 이삭이라는 자녀는 어떤 사람인가? 이 우물을 파는 이삭이 20년간 자녀를 못갖죠. 자, 이상하게 아버지 아브라함도 사라도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하다가 가졌는데 아들 이삭도 리브가와 결혼해서 20년간 자녀를 갖지 못합니다. 야곱과 라헬도 마찬가지죠. 오랫동안 갖지 못하죠. 그러니까 이런 이슈가 있었던 거예요. 이 가정에.... 그런데 이 이삭이 그 20년의 세월 동안 하나의 신앙으로 기도합니다. 즉 막혀있었던 그 우물을 파내는 것이죠. 결국에는 그 자녀를 얻게 되잖아요. 쌍둥이를 얻게 되잖아요.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되잖아요. 여러분. 이 이삭의 그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에 오랜 시간 동안 응답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역사해 주실줄로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분의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게요. 외국에 사시는 자매님이 온라인으로 저희 예배를 드리시다가 자신의 아픔을 좀 나눠주셨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셨는데 이 자매분인데 부모님의 손이 닿지 않는 해외로 유학을 가서 거기에서 살았는데요. 좀 방탕하게 사셨다고 해요. 죄송하지만 파티를 하고 심지어 마약에도 좀 손을 대고 그러다 보니까 좀 문란하게 사셨던 것 같습니다.
낙태도 여러 번 하셨던 거예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나중에서야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고 회개하고 눈앞에 매달렸지만 나중에 이 죄가 계속 그 마음을 짓누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하긴 했습니다. 외국인을 만났어요. 결혼을 해서 이제 임신을 했는데 유산이 되는 겁니다. 임신을 했는데 유산이 되는 겁니다. 결국 아이를 갖지 못했어요. 의사선생님 말씀에 낙태를 많이 해서 자궁이 상했다는 겁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이 상태로는 아기를 갖지 못합니다. 안 된다는 결론을 딱 받은 거죠. 이분이 저에게 이런 문의를 하신 거예요. 질문을 하셨어요.
’목사님 제가 회개할 때 그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사해짐을 분명히 믿지만 제 몸에는 여전히 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죄가 범한 낙태의 죄에 대한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죄인 중인 죄인이시면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 같은 저에게도 다시 한번 엄마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실까요?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여러분 정말 정말 죄인이시죠? 우리 화종부목사님 표현대로 국가대표급 죄인이시죠? 파티에 마약에 낙태에 정말 하나님 입장에서 생명 주는 게 맞나? 너에게는 자격이 없다라고 할 사람이잖아요. 그가 그때 그게 죄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켰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너무나 간절한 거예요. 제가 뭐라고 답변을 해야 될까? 그때 떠오른 말씀이 다윗이였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가는 정말 끔찍한 거죠. 가정이 파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자녀가 잉태되었지만 결국에는 죽고 맙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다음에 출신 아들이 있었죠.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여기에 대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던 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래서 진정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시고 다시 주신 그 자녀의 이름이 ‘여디디야’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내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어요.
우리 자매님의 그 죄를 회개할 때 용서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죄인이지만 그러나 십사가에도 주님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여전히 사랑받는 따님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말씀을 드렸어요. 그분이 그 소식을 듣고 뭘 나가기 시작했냐면 여러분들처럼 새벽 기도를 나가는데 여러분 미국 교회는 새벽 기도가 없어요. 갔더니, 문이 잠겨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미국 교회 그 새벽에 그 문 앞에서 바깥이죠, 거기서 스스로 새벽 기도를 하는 거예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에게 다시 한번 엄마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저에게 생명을 주시면 이 아이를 정말 기도로 키우겠습니다’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새벽마다 미국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어느 순간 기도가 제목이 바뀌더랍니다.
나의 자녀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우리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하면서 북한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또한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래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막 기도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여러분 이것이 누구의 기도입니까? 한나의 기도예요. 처음엔 자녀를 주세요. 라고 하다가 하나님이 자녀를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녀도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가 바뀌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분에게도 그런 기도가 바뀌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의 막혀 있었던 우물을 파내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던 중에 어느 날 마음의 이사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위안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제사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결국엔 그 해에 수개월을 지나고 11월에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을 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야기의 핵심은 기도했더니, 임신했다가 아니라 핵심은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시다라는 그 믿음이 사라지고 여전히 선하신 분이시지, 또한 그녀의 기도가 바뀌었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도 고백하기를 제가 원하는 것만 간구하던 부족한 기도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성숙한 기도의 자리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그분이 한국에 들어오셔서 저희 교회 등록을 하셨어요. 얼마 전에 베이비 블랙이 났는데 축하를 받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저는 그 과정을 다 알잖아요.
아 하나님은 정말 너무 좋은 분입시다. 정말 국가대표급 주인 같은 우리 우리일지라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그 충만한 은혜를 보여주시는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다시 한번 그분을 통해서 보면서 제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고 그 사랑을 그대로 믿는 받아들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래서 아까 뭐 해야 한다고요? 우물을 파내야 한다라고 했죠. 이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따라 하겠습니다. 파낸 우물은 믿음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채워야 한다. 자, 엄밀히 말하면 이 막히는 것을 제거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요. 말씀과 성령으로 그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역사가 일어나게 되죠. 어떤 역사가 일어나고 있느냐.
사라를 보시면 사라가 태가 열리지 않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창세기 18장 시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다음에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 너에게 아들이 있을 거야. 그녀의 하나님이 선하지 않다라고 하는 믿음을 제거해 주시고 그다음에 뭘로 채워주십니까? 말씀으로 채워주셨어요. 내년 이맘때 너에게 자녀가 있을 거야. 내년이면 또 여러분들에게 자녀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네. 기가 막혀 있는 분들에게 사랑하는 딸과 아들 주님께서 주실 줄은 믿습니다. 사라가 그 약속을 받게 되는 거예요. 특별함에 돌보심이 있었던 것이죠. 또한 이 마가복음에 보면 혈루증 앓았던 여인이 있어요. 12년간 고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고침을 받지 못하고 모든 재산에 탕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선하지 않을 분 같아. 그런데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믿음을 선포하지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여러분 영어로 보면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he had been saying to herself. 자신에게 선포했다는 거예요. 자신에게 어떤 선포를 했냐면
‘내가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을 거야. 내가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을거야.’ 스스로에게 말씀을 가지고 선포한 거예요. 계속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죠? 딸아. 내딸아 주님은 그녀를 잊은 적이 없어. 주님이 나를 아실까? 예수님 처음 보는 여인 아닙니까? 그런데 내 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너의 병에서 놓여서 건강할지어다. 주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었어. 그녀가 병도 치유받고 구원도 얻게 되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혹시 우물이 막힌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으로 여러분들의 심령을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이 말씀으로 자신에게 선포하시고 그 말씀으로 나에게 고백하며 적용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여러분들의 상황 가운데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김미경 대표라는 분이 계시죠? 독설 또 김미경의 마음속 이런 책을 쓰신 분인데 몇 년 전에 이분이 회심을 합니다. 어머님이 독실한 신앙인이셨는데 어머님이 계속 딸을 전도하기 위해서 얘기를 하면 엄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 얘기하지 마 이런 식으로 거절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이분이 왜 회심을 했느냐.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 5남매를 위해서 책을 썼어요. 각각 자녀에게 바치는 편지와 같은 책입니다. 그것도 병상에서 누워서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하나 다 남겨주신 거예요. 대단한 어머니이시죠. 그런데 이 어머니가 쓰신 내용의 공통 주제가 뭐냐면 너희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살아야 한다. 이거였습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시냐면 이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또한 결혼한 이후에도 아들을 낳지 못해서 아유 아들도 낳지 못하는 저 불쌍한 홍순이 이런 식으로 놀림을 받았던 거예요. 시골에서 양장점이나 하는 홍순이 이런 식으로 놀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런 얘기 듣고 나면 돌아와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을 근거로 선포했답니다.
딸만 길러놓고도 아들보다 더 잘 기를 홍순이, 작은 양장점을 길러도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운영할 수 있는 홍순이... 이러면서 믿음의 말을 계속 선포하면서 지우고 다시 썼다는 거예요.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자녀들아 한 가지만 기억하여라. 너희가 누군지를 알고 살아라. 너희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녀들이다. 잊지 말라. 어제 누가 너를 욕하고 너를 끌어내리고 너희를 모욕하였으면 그것을 다 받고 있지 말라. 아침마다 그것을 다 파내고 지워라. 그리스의 이름으로 지우고 다시 써. 나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녀다. 그것을 자녀들에게 다 써주는 거야. 김미경 대표가 말하기를 우리 엄마 가방끈 짧은데 공부만이야.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시다.
우리 어머니가 훨씬 더 지혜로우시다라고 하면서 그가 결국엔 그 어머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라는 그런 귀한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어머니도 이 신앙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블레셋이 뿌려 넣는 그 쓰레기와 흙더미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야. 그것을 파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러분 악하고 절망적인 생각들을 나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끊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비록 정말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여러분들을 잊지 마시고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결론으로 갑니다. 자 아까 이삭이 우물을 팠는데 하나는 에섹 다툼이라는 의미의 ‘에섹’ 또 대적한다는 싯나라는 우물을 팠어요. 자 그 다음에 판 우물이 무엇이냐?
르호 무엇입니다. 이게 중요한 표현이에요. 르호. ‘르호봇’은 하나님께서 넓혀주셨다는 의미입니다. 22절에 나오는데요.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좁은 곳에서 막 싸우다가 이제는 넓은 곳에서 싸우지 않고 이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르호봇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께서 넓게 하셨다. 지경을 넓혀주셨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지경이 넓어졌기 때문에 좁은 곳에서 그렇게 썰어 싸울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평안을 주셨다. 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넓혀주시다. 내게 평안을 주셨다. 하나님 그동안 참 많은 공격이 있었는데, 이제는 저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이제는 저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라는 고백이 르호봇이라는 것이죠.
그 이삭이 이 고백을 하나님께 하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이 르호봇을 보면서 저에게도 불신앙의 우물을 파내며 이 르호봇의 은혜를 줬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미국에서 11년 동안 이민생활을 하다가 또한 이민교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캔자스시티라고 하는 캔자스라는 지역은요. 한인이 4천 명이 되지 않습니다. 땅은 굉장히 광활한 곳이긴 하지만 이민 사회에서는 굉장히 좁은 사회였죠.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목회자들의 무덤, 들어가는 곳에 12명의 성도와 함께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참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아내도 순간순간 이곳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제가 어느 날 짐을 막 쌌습니다.
아내가 뭐라고 물어봐요? 당신 뭐해? 나 한국 돌아가려고.... 뭐하는 거야? 당신 왜 그래? 아내가 붙잡아줘. 어느 날 아내와 짐을 쌉니다. 당신 뭐해? 한국 가려고. 당신 뭐하는 거야? 감사한 거는 둘 다 싼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유혹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좌절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사명지를 끝까지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어요. 어느 날 새벽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성도들이 별로 없으니까 저와 아내만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분이 새벽 기도에 딱 오셨어요. 그 한 분을 놓고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한 명이라도 실망하지 말아라. 천하보다 귀한 나의 사랑은 자녀다. 그러니까 그 1명이 천 명 모였다. 생각하고 만 명 모였다.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해라.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처음엔 그게 잘 안 됐어요. 아 1명이 1명이지 그게 천명입니까?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하나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영혼이니까. 이 새벽에 또한 한여성년 추배 때 몇 명이 오든 정말 이 자리에 가득 아니 천군천사가 함께 얘기한다는 그 마음으로 그렇게 예배를 준비하면서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지었는데 깨어진 가정들이 살아나기 시작해서 여러분 사람이 안 간다고 이러십니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것도 블레셋에서 뿌리는 흙더미일 수 있어요. 저는 이민 목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변하는 것, 가장들이 회복하는 것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정말 주 안에 사신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주가 술 주자입니다.
무려 40년간 술 중독에 빠진 남자분이 계셨어요. 이 남자분이 어느 날 저희 교회에 오시는 거예요. 아내가 이 남편을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술 중독에 그렇게 술 주정을 해도 이 남편을 버리지 않고 남편이 변할 수 있다. 주님을 정말 만나면 변한다라는 등 믿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 남편이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저 저 뒷구석에 예배는 드리러 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맨 위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어느 날 성가대에 서 있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알고 봤더니, 사정이 이랬습니다. 저 뒤에서 아내랑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그 아내 집사님이 예배를 드리면, 말씀을 드리면, 은혜가 될 때 아멘 아멘 이런 거예요. 그게 꼴보기 싫어가지고 그냥 성가대 가서 앉아있는 거예요. 그게 싫어가지고. 그래서 감사한 게 노래를 좋아하셔가지고, 술을 마시면 또 노래를 해야 되잖아요.
노래를 좋아하셔가지고, 성가대에 선 거예요. 그런데 이것도 음치야. 또 음치이지만 그래도 그분이 선 자체가 하나의 굉장한 메세지입니다. 그 지역사회에 그분은 변하지 못해. 그분은 술을 끊지 못해라는 것이 파다했던 시기에 성가대섰다는 것만으로 교회에 소문이 빠져나가지고 그걸 구경하러 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거든요. 그게 사실이냐 이러면서 그랬던 분이 찬양을 하면서 가사를 읽으면서 은혜가 되자 이게 여러분 가사에 말씀의 능력이 있어요. 여러분 마음이 조금 변하는 거예요. 부드럽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은요. 금년 성령집회를 드리는데 그분이 오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예배를 드리다가 그분이 오셔가지고, 그분을 계속 쳐다봤어요. 이렇게 그분이 왔어. 이러면서 이분이 왜 오셨는가? 코로나가 터지고 사업이 다 안됐어요. 레스토랑을 하셨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비슷한 시기에 술만 생각하면 술이 싫지고 겁나 머리가 아프고 토할려고 해요. 이게 뭐 자기가 한 거겠습니까? 그렇게 된 거죠. 그렇게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토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모집에 9개월간 딱 12명만 제자훈련 시키겠습니다. 모집을 했는데 11명까지 모집이 되고 1명이 모집이 안 됐어요. 제가 그렇게 광고를 했더니, 자기가 그 사람이라면서 지원을 하시는 거예요. 9개월을 매주 훈련하는데 진짜 단 한 번도 안 빠지시고 개근을 하셨어요. 수료를 하시는 날 그분이 이렇게 고백을 하신 거예요. 12명의 모집을 할 때 한 명이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 그 한 명이 나거나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 그렇게 믿어졌습니다. 저는 사실 40년간 질질 끌려다니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터지면서 가게 문을 여닫는데 그때부터 놀랍게 40년간 마시던 술이 싫어지고 술이 겁나고 술 생각만 하면 머리 아프고 토해내고 싶어졌습니다. 과거에 사업이 크게 망하고 고난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누군가 저를 위해 항상 돌봐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이 있었음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정말 예수님을 알았으니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을 따라가며 제자를 삼는 제자로서 겸손과 소박함과 사랑과 풍요를 베푸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합니다. Candle Village 캔사스에 어디 이런 루머가 있었어요. 예수님이 오셔도 안 된다. 그런데 그 12명 했던 교회가 50명, 100명, 150명, 200명. 그렇게 하나님께서 회복을 시켜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넓혀주신 것이죠.
그러나 진정한 르호봇은 죽어가던 가정들이 평안을 누리게 되고 다툼이 그친 자리에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르호봇이었습니다. 누가 그 가정을 살렸습니까? 누가 그 교회를 살렸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려주신 것이죠. 어느 날 제가 목회를 하는데 어떤 승무원님이 저에 대한 꿈을 꿈 거를 전해주셨어요. 영어로 이렇게 얘기해요. ‘당신은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게 될 겁니다.’ 또 다른 분이 꿈을 꾸신 후로 저한테 얘기를 하셨어요. 목사님은 언젠가 더 넓은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수천 명에게 말씀을 전하게 되실 거예요.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저의 목회지는 여기이고 저는 소박하게 목회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정말 2021년에 5월에 지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선한목자 교회에 담임이 됐다는 청빙자의 전화가 왔어요.
제가 그때 꿈 생각이 났습니다. 그 두 분이 말씀해주신 것이 생각이 났어요. 하나님께서 다른 곳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면서 많은 분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해 주시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 부담은 됐지만 제가 결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끌어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일주일간 기도한 이후에 순종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온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제가 한개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죠. 그러나 돌아보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한 가지 잘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 오셔도 캔자스는 안 돼. 그 불신앙을 거절하는 것. 예수님이 주인이 됐으면 망한 뒤에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것을 믿고 선포하며 기도했던 것.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인 나라라고 하는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구나 라는 그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르호봇은 작은 교회를 섬기다가 큰 교회로 옮겼다. 그것이 아닙니다. 저의 르호봇은 무엇이냐면 결국에는 그 복귀 현장 가운데 수년간 다툼이 있었던 교회의 다툼이 그치고 평안히 임하는 것 그것이 르호봇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르호봇은요. 여러분 더 큰 넓은 자리로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분에게는요. 하나님께서 노래를 주셔서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요, 더 넓은 지경은 아닐지라도 그 자리에서 다툼이 그치고 하나님 평안이 부어지는 그런 거르 주실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역사하실 때 그 맡겼던 우물 주님과의 관계가 또한 하나님 그 보고 열려지고 평가하게 되어서 진정한 나라를 세워나가는 하나의 사람들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르호봇의 은혜가 막힌 우물물이 뚫려서 여러분들의 삶의 가정 가운데 자녀들 가운데 흘러넘치는 하루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의 메시지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함께 우리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특새 네 번째 날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셨음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사모하지만 마음에 답답한 분들도 있었을 것이고. 주님 또한 기도가 잘 되지 않는 분들도 주님이 있습니다.
주여 이 시간에 그 막혀 있던 우물이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완전히 뚫어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블레셋이 뿌려놓은 흙더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도 모르게 받아들였던 도전적인 생각과 불신의 또한 시기와 질투와 미움의 마음들, 주여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깨끗하게 치워주시고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을 심게 하여 주시고 붙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친히 인도하여 주셔서 에색과 싯나는 결국에는 르호봇이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 하나님께서 넓혀주시는 끝 지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경산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누군가가 다시 달라 하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함을 주시옵시고, 주여 그들을 오히려 축복하며 기를수 있는 주여 하나님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는 우물도 내어주며 또 하나는 새로운 터뜨려주셔서 가는 곳마다 막힌 곳이 열려지게 하여 주시고 가는 곳마다 세계를 열려지는 웨이메이커 되신 주님만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는 우리 경산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특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욱더 날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함이요. 주님의 충만한 생수의 강이 배에서 절로 나와 경산 지역만이 아니라 대구 지역만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과 열방에까지 그 축복을 흘려보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영광 올려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중요한 군사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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