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들으며 목사님의 질문에
‘저에게 있어 이삭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뜻밖의 이삭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제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종종 저를 깊은 절망감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면 시험 가운데서도 내 생각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이제는 저의 고백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저는 저의 약함으로 쉽게 위축되고 쉽게 무너지기를 반복합니다.
영적으로 살아남고자 음치, 박치, 몸치임에도 콰이어를 지원했고, 이번 특새 콰이어까지 섬기게 되었습니다. ‘아휴~더 못하겠다. 이제는 그만해야지~’
매번 다짐하면서 3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실 강대상에 오를 때마다 늘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은 틀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면서도 가끔은 제가 음치, 박치, 몸치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특새 첫날, 어떤 찬양곡이 떠올라 남편에게 “이 찬양 알아요?” 라며 신나게 흥얼거렸는데,
음감이 뛰어난 남편이 대뜸 말했습니다.
“그 노래 아닌데??” 라는 남편에게 “그래~음감 있어 좋겠다. 대신 하나님은 내게 더 많은 머리숱을 주셨지” 라며 민망함을 우스갯 말로 넘겨봅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제 신앙도 그랬습니다.
저는 늘 제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여겼습니다.
말씀보다 현실 계산이 앞섰고,
순종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했으며,
기도보다 내 판단으로 먼저 결론 내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 아닌데?”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이삭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했듯이,
저 역시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의지했던 ‘내 생각’을 매순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제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저의 연약함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은혜의 자리가 됨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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