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 주인으로 모시는 가정
* 경배와 찬양
지금까지 지내온 것(찬 301) / 그 날에 천국에서
* 금주의 요절 말씀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이사야 46장 4절)
* 말씀 : 마가복음 5장 25-34절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오늘의 메세지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곳에는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1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2절).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자를 한가운데에 세우십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중에 무엇이 옳은지 물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침묵합니다(3~4절).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에 분노하시며,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헤롯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5~6절).
오늘 본문에는 두 개의 시선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바리새인의 시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을 고발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정죄의 눈’입니다. 오로지 정죄할 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독이 가득한 눈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자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탄식하시는 ‘사랑의 눈’입니다.
사람은 상황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정죄의 눈으로 바라보면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고, 죽이는 행동을 합니다. 반면,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즉, 살리는 행동을 합니다. 이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동일한 상황과 환경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은 어떤 시선으로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시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과 악, 생명과 사망 중에 무엇이 옳은지 물으십니다. 다시 말해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며,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우리 가정이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서로 헐뜯고 정죄하는 시선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해,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가정이 되길 소망합시다.
* 은혜 나누기
1. 최근에 누군가를 정죄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고, 그때의 심정이 어땠는지 가족과 함께 나눠 봅시다.
2.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정이 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할지 구체적으로 나눠 봅시다.
* 함께 기도하기
정죄와 비난이 아니라 사랑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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