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창 28:10-22)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절망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멈춰 세우신 “한곳”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생각한 안전한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닥다리가 있지만, 진정한 해결자와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말씀합니다.
야곱은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후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를 실제로 경험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지금 여기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한 긍정이나 부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 계신다”는 실존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적용]
5월이면 외며느리인 저를 “우리 막내딸~”이라 불러 주시던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많이 보고싶어집니다. 1남 6녀 중 남편을 마흔에 낳은 아들이라 어머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제게 시어머님이라기 보단 할머니 같이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님은 금강대도(1874년 이승여가 창시한 한국의 자생 민족종교)를 믿는 집안끼리 인연이 닫아 시집오셔서 외며느리로 평생을 그 신앙을 지켜 오셨습니다. 그것은 외며느리로 어머님께는 평생 시켜내야 하는 단순한 조상에 대한 도리를 넘어서 사명과도 같았습니다.
남편의 큰누님을 통해 작은 누님들, 남편이 전도를 받아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어머님은 당신의 종교를 사명처럼 여기며 당신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지켜내고자 하셨습니다.
자녀들의 집에 머물 때면 그 자녀들의 교회 주일예배에는 늘 출석을 하셨습니다. 예배가 시작됨과 동시에 늘 꾸벅 꾸벅 조시는 듯 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면 각 자녀들이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의 성품부터 주일 설교내용을 이 내용은 이래서 맞는 말이고 저 내용은 저래서 좋았다고 어머님 나름의 평가를 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나 고령으로 노환과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 하시게 되었고 입원중 어머님이 어떤 꿈을 꾸시고 두려움에 떨며 꿈에서 깨셔서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그 꿈은 하늘에서 큰 불이 내려와 어머님께서 평생 믿었던 금강대도의 모든 기물들을 깨어 부수고 불로 태워지는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 꿈을 통해 어머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를 두려움 가운데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내가 예수 믿는 다고 하면 그동안 평생을 금강대도가 옳다고 믿어왔던 나를 두고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라는 사람들의 이목이 두렵다시며 쉽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오랜 기도에 응답하시고 형님들이 다니시는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영접기도를 하시게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시기 전까지 자녀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시다 어머님께서 평생 소원하시던 대로 평안히 주무시다 소천하셨습니다.
소천하신 어머님의 베개 밑에는 자녀들, 손자, 손녀들의 기도제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님의 생의 긴 여정 중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어머님 장례를 치르고 난 비용의 일부를 드려 넷째 형님이 다니시는 교회 협력 선교지인 캄보디아 땅에 우물을 기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영혼들이 육신의 목마름 뿐 아니라 영의 목마름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영적인 생수의 강이 흘러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에 머물게 하셨던 것처럼, 어머님의 긴 인생 여정 가운데도 하나님의 때에 한곳에 머물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제는 어머님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저 또한 삶의 모든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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